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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탄 지휘자, 차인홍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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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탄 지휘자, 차인홍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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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BS 1TV 글로벌 성공시대

 

 

“바이올린은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이며, 

음악은 저를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지요. 

휠체어에 앉아서 음악을 통해  세상에 한 걸음씩 다가서는 게  소망이었습니다." 

- 차인홍 교수




2000년 4월, 8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미국 오하이오주 라이트 주립대학의 바이올린 교수 겸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임용된 바이올리니스트 차인홍. 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음대 교수의 자리에 오른 의지의 한국인! 

대전에서 태어난 그는 두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휠체어에 의지하게 되었다. 아홉 살이 되던 해, 집안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조차 보낼 수 없게 되자 어머니는 장애가 있는 아들을 무료 재활원에 맡겼다. 그곳에서 강민자 선생이라는 분을 통해 바이올린을 처음 접했다. 하루 10시간씩 연습에 매달린 그는 1년 만에 도내 콩쿠르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24살까지 초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였던 그는 유학을 위해 중·고교 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우여곡절 끝에 주변의 도움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신시내티 음대에서 세계적인 라쌀 4중주단의 지도를 받고, 뉴욕시립대학교 브루클린 음악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에는 5년간 대전시립교향악단의 악장을 맡으며 국내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이후 다시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에서 지휘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에는 치열한 관문을 뚫고 오하이오주 라이트주립대학에 바이올린 교수 겸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임명됐다.

차 교수는 장애와 불우한 환경에 주저앉지 않고, 현재에 최선을 다하며 삶을 즐겼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 환경을 탓하며 절망하는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바이올린을 켜는 것 말고는 달리 없었다. 소아마비라는 장애를 극복하고 첼로의 황제가 된 피에르 푸르니에가 “살기 위해 음악을 하지 말고 행복하기 위해 음악을 하라”고 당부하던 말을 차 교수는 진작부터 실천하고 있었다.

 

 

1. 휠체어 탄 마에스트로, 차 교수의 성공신화
장애를 가진 재활원 소속 초등학생이었던 차인홍 교수에게 음악은 낯선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귓가를 스친 바이올린 소리는 가라앉아 있던 마음에 불을 지핀 첫 번째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음악과의 운명적 만남으로 지금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차인홍 교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2. 장애로 좌절했던 인생, 멘토를 만나다! 

차인홍 교수가 바이올린을 잡게 된 것은 강민자 선생 덕분이다. 대전에서도 꽤 이름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그녀는 개인 시간을 쪼개 재활원 아이들에게 무료로 바이올린을 가르쳐 주었다. 차 교수는 “나는 철저하게 사랑의 빚을 많이 진 사람이다. 내게 사랑을 주시는 분들과의 수많은 만남으로 인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돌아보면 장애가 오히려 저에게는 축복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음악을 했을 리 없고,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  많이 계신다는 것도 몰랐을 것입니다.” 

 - 차인홍 교수 





 

3. 편견에 맞서 이뤄낸 인생의 절정 

그는 1년에 100회 이상 연주회를 하며 세계 곳곳을 누비는 바이올리니스트, 휠체어의 지휘자이다. 그의 연주가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것은 그 인생의 고난을 아름다운 선율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세상을 지휘하는 차인홍 교수. 그의 꿈과 열정을 응원한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분들도 저를 보고 희망을 가졌으면 합니다.

지금 당하는 고통이 너무 크다고 느낀다면, 

이룰 수 있는 꿈도 그만큼 클 것입니다.” 

- 차인홍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