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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으로 춤추는 발레리나 '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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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5대 발레단인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나인 강수진!
대한민국을 뛰어 넘어 세계적인 발레리나였던 강수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14세에 홀로 유학길에 올라 최연소 발레리나로 이름을 알렸던 그녀는
끊임없는 노력과 연습으로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로 승승장구하던 강수진의 발레 인생에도 슬럼프가 있었다는데...
뼈에 금이 간 채로 5년간 발레 활동을 강행했던 그녀는 결국 발레를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진단까지 받았다. 
이런 어두운 공백기를 딛고 화려하게 재기하기까지... 그녀의 이야기 알아보도록 하자.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리틀엔젤스 예술단원으로 한국 무용을 한 강수진은 1979년 선화예술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발레를 시작하게 되었다. 

 

“원래는 스튜어디스가 되고 싶었어요.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발레하고 싶은 사람 손들어보라고 했는데, 발레를 좋아했기 때문에 무심코 손을 들었죠.
특별히 신체 조건이 좋은 것도 아니었는데, 아마 시기도 적절했고 선생님도 좋아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제가 발레에 미칠 수 있었기 때문이고요.”



 1982년 강수진은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이에 관련된 유명한 일화로,  강수진의 어머니는 강수진이 외국 유학을 가는 그 순간부터 그 아이를 내 딸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며, 이제 그 아이는 만인의 딸이다 라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유학생활은 외롭고 힘든 시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강수진은 하루에 토슈즈를 서너 켤레씩 사며 오로지 연습에만 집중하였다. 오랜 시간 군무생활을 했던 강수진은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도 진심을 다해 동작을 보다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1985년 강수진은 로잔 콩쿠르에 한국인 최초로 참가하여 스칼라쉽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세계는 강수진에게 주목을 하기 시작하였고, 1986년 강수진은 슈투트가르트 발레 입단을 하게 된다. 그때 그녀의 나이가 열아홉살. 이는 발레단 역사상 최연소 입단이었고 이 때 나는 이때 진정한 학생이 되었다 라고 이야기 하며 다시 한번 자신의 발레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마음을 다 잡는 기회가 되었다고 한다. 
 
 
 강수진은 1999년 모스크바에 있는 국제부용협회가 발족한 상인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무용수상)를 수상하게 된다. 존 노이마이어의 ‘카멜리아 레이디’에서 마르그리트 역을 맡았던 강수진을 두고 “안무가 훌륭함은 물론이지만 강수진의 사랑스러운 연기가 아니었다면 작품이 제대로 살아나지 못했을 것” 라는 평이 쏟아졌다. 그녀의 수상은 독일 무용계 최대의 경사였고 슈투트가르트 전체가 잔치 분위기에 휩싸였다.

 


 하지만 강수진은 '지젤' 공연을 앞두고 정강이뼈 스트레스성 골절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실질적으로 발레리나 은퇴를 생각해도 될 정도로 치명적인 선고를 받은 것이다. 그리하여 강수진은 1년의 공백기를 가지게 되지만 공백기인 1년간도 강수진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가벼운 발레동작과 스트레칭을 하며 1년이 지난 이후 이전보다 더욱 다듬어지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계무대에 인사를 하였다.

 강수진은 슬럼프와 잦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연습'으로 이를 극복을 하였다. 물론 처음에는 연습을 하며 울기도 하고, 정말 힘들었지만, 계속 연습을 하다 어느 순간 어떠한 부분을 넘어섰을 때 그 동안의 힘들었던 모든 일들을 잊을 만큼의 희열을 느끼며 슬럼프를 극복했다고 한다. 


 

 1993년 슈투트가르트 발레 주역 데뷔 이후, 1994년 '로미오와 줄리엣', 1995년 '잠자는 숲속의 미녀', 1996년 빈 국립 발레 '마타하리'를 연기하며 세계적인 발레리나로 자신을 갈고 닦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다.  2007년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트 주는 그녀를 카머탄처린 (궁중무용수)으로 선정했다.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받은 작위였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시상식 다음날 아침에도 똑같이 연습실에 나갔어요.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는게 중요한 거죠. 그저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작품활동을 활발히 하던 중 한국 국립발레단 단장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고 2014년 2월부터 3년간 국립발레단을 맡게 된다.  


                            "제겐 새로운 기회였죠. 발레리나로서의 삶 그 이후에도 발레와 함께 할 수 있는 제 2막이 열린 거에요.
끝은 곧 또 다른 시작이니까요. 아직도 그날을 기억해요.
     지난해, 제 발레 인생 중 가장 사랑한 작품<오네긴>을 끝으로 지난 30년간의 현역 생활을 마무리 했어요.
이토록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었던 저는 누구보다 행복한 발레리나였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에게도 자극을 주었던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사진은 강수진의 아름다움 연결되지 않을 만큼 근육과 굳은 살만 가득한 울퉁불퉁한 모습이었다.  하루 24시간 중 20시간을 발레를 하였고. 눈뜨자마자 연습했고, 눈 감기전까지 연습했다. 무대 위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발레리나의 이면에 숨겨진 고통의 시간을 그대로 보여준다. 강수진은 최고의 발레리나이고, 최고는 절대 그냥 주어지지 않음을 온 몸으로 증명하여 주었다. 50세인 적지 않은 나이로도 전 세계를 돌며 발레리나로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스러운 인물로 인정받는 비결이야말로, 이러한 그녀의 노력과 열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관련 동영상]

• EBS 인성채널 e - 인물, 강수진 편 (로그인 없이 시청하기) ​

 


[출처]

•  네이버 매거진캐스트 문화산책 ‘국립발레단 신임 예술감독 강수진 연대기’

•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강수진  

•  백지연의 피플 INSIDE 강수진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