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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 열정을 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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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이제 한국은 박항서의 나라이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믿어주는 그의 ‘파파 리더십’에 베트남 국민들이 열광하고 있다. 2002월드컵 당시 수석코치로 얼굴을 알렸던 그는 한국에서 ‘제2의 히딩크’, 베트남 대표음식 쌀국수와 거스 히딩크 감독을 합친 ‘쌀딩크’로 불린다.

박항서 감독은 10년 만에 동남아 국가대항전인 스즈키 컵에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갓항서’로 부상했다. 선수의 발을 어루만져주고 부상당한 선수에게 비즈니스석을 양보하고 선수들에게 내려진 부당한 판정에 항의하는 등 팀원과 소통하며 보듬는 사례들은 ‘마법’처럼 어린 베트남 선수들을 열정과 정신력으로 변화시켰다.

 

  

[출처] 다큐공감

 

“박항서는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느끼게 했어요.”

“1억명의 베트남 사람들이 베트남 축구팀에 대해 자랑스러워 하도록 도와주셨어요. 마치 베트남 축구팀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준 것 같아서 베트남 국민들이 매우 행복해하고 있어요!”

 

베트남 통일 이후 이렇게 많은 인파가 하나 되어 거리로 쏟아진 적이 없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베트남 국기를 들었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응원하는 것은 23세 이하 베트남 축구 선수들. 아시안컵 예선을 통과한 대표팀이 우승후보 이라크를 승부차기로 이기자 모두의 관심은 한 사람에게 쏠렸다. 대표팀 감독 박항서이다. 박항서의 이름을 연호하는 사람들은 그가 기적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국내에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2017년 10월, 그가 300:1의 경쟁률을 뚫고 베트남 대표팀 감독이 되었을 때 베트남 여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들에게 박항서는 2002년 월드컵에서 히딩크를 보좌한 2인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베트남에 오기 전 박항서는 한국의 3부리그에 해당하는 창원시청 감독이었다. 국가 대표팀 감독에서 프로구단을 거쳐 3부로 내려온 그는 국내에서 더 이상 감독으로 갈 자리가 없다고 느꼈다. 젊은 감독들이 등용되는 흐름 속에 그의 인생1막이 끝나고 있었다.


"국내 모든 감독을 통틀어 박항서 감독이 1등이었어요. 승률 68%! “


박항서 감독은 실적이 부진한 팀을 끌어올리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우린 그를 히딩크의 코치로 기억하지만 사실 그가 감독을 맡은 팀은 늘 놀라운 성적을 기록하며 리그 1위를 차지하거나 상부리그로 승격되었다. 그는 선수들의 장점을 올리고 단점을 극복시키는 리더였다. 이런 그의 장점은 베트남 선수들의 잠재된 능력을 깨우는데 발휘되었다.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던 베트남의 젊은 선수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출처] 다큐공감

 

베트남의 웹툰 작가 딴 안은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 처음 왔을 때부터 대표팀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온 박항서라는 의사는 인삼을 선수들에게 나눠준다. 선수들은 박항서가 준 인삼을 먹고 근육질의 남자가 되어 경기에서 이긴다.’ 는 내용이다.

 

 

기적은 높은 곳에 있는 특별한 사람의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늘 일상적인 곳, 평범한 사람의 단어였다. 인생 1막의 절정에서 한참 내려와있던 박항서 감독은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축구밖에 없기 때문에 축구를 계속 하고 싶고,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베트남으로 갔다. 사람들은 그의 성공을 기적이라고 말하지만 삶이란 매 순간이 기적인 법. 진정한 리더는 그것을 믿게 하는 사람. 그래서 성공과 실패의 양단에서 나를 발견하게 하는 사람인지 모른다. 

 

 

[관련영상]

JTBC 스포트라이트 '박항서 매직' 밝히다

 

[내용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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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베트남 대표님 감독 박항서 '인생 2막'. 고개 숙이지 마라> 바로가기 

 

[썸네일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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