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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 대학 부학장이 된 한국 열등생 폴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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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 지금도 학창 시절 혼나고 맞고 창피당하는 악몽에 시달린다고 고백하는 열등생이었던 폴김. 한국에서 학교에 다닌 12년 동안 매일 두려움에 떨었던 그는 현재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교육대학원 부학장이다.
폴김은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국의 교육이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전 세계 개발도상국을 다니며 400만명의 아이들에게 '국경없는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그가 개발한 열악한 교육환경의 아이들에게 '질문'을 통한 양질의 수업을 제공하는 '스마일(SMILE)' 프로젝트는 '2016년 유엔 미래교육 혁신기술'로 선정되기도 했다. 글로벌 시대에 진정한 세계시민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Q. '스마일(SMILE)'은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A. SMILE은 'Stanford Mobile Inquiry-based Learning'의 약자로, 모바일 학습을 활용해서 어떻게 고등(高等) 사고력을 계발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구상한 프로젝트입니다. 저는 질문 기술을 보면 학업 성취도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하거든요. 그래서 질문을 잘하고, 많이 하고, 양질의 질문을 계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SMILE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전 세계 학생들은 브라우저(browser)가 있는 기기만 있으면 SMILE 플러그(plug)에 연결해서 모바일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어요. 프로그램은 클라우드(cloud) 기반으로 연계돼 실시간으로 학습자들이 어디에서 어떤 교육 활동을 했는지, 또 어떤 질문을 얼마나 했는지 분석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SMILE을 통해 양질의 수업을 제공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깨달은 질문들을 끌어내고 해답을 유추할 수 있는 능력, 즉 고등 사고력을 키워주는 것이죠. 그리고 수업 데이터 분석을 통해 세계 각 지역의 아이들이 생각하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알릴 수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앞으로 모든 트레이닝 교육 환경은 SMILE과 같은 교육 기술을 접목해야 할 겁니다. 특히 효율성이 아니라 질문 중심의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요.

Q. 현재 교육 관련 봉사를 하고 계시지요.
A. 비영리 국제교육재단인 '시즈 오브 임파워먼트(SEEDS OF EMPOWERMENT)'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씨앗(seeds)이 힘을 담지(empowerment)하고 있다는 뜻으로 이름 붙였어요. 저희는 그 씨앗을 이식(plant)하는 겁니다. 도움을 주는 모든 것을 스스로 깨우쳐서 자기 자신을 돕게끔 하는 거죠. 우리가 무언가를 대신해주면 사람들이 수동적으로 변하기 마련이거든요.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저희는 씨앗만 심는 겁니다. 교육 실천의 사회적 전략과 방법을 알려주면 그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요. 이런 식으로 꾸준히 전 세계 개발도상국을 다니며 열악한 교육환경에 놓인 아이들을 돕고 있어요.

 
[출처] Youtube ㅌㅇ


Q. 교육공학자로서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잖아요. 부학장님의 학창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한국에서 학교를 다닌 12년동안 단 하루도 학교를 좋아한 적이 없었습니다. 늘 맞는 학생이었으니까요. 초등학교 1학년때 이유도 모른 채 맞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가 학교에 오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엄마가 와야 돈봉투를 주니까요. 저는 공부를 하고 싶지도 않았고, 잘 하지도 못하는 학생이었어요.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늘 맞았는데 그때도 사소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엉뚱한 질문을 한다든지, 얼굴이 웃는 상이다 보니 실실 웃는다며 저를 때렸어요. 맞을 때마다 억울했지만,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학교에서 겪은 일을 부모님께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다. 걱정 끼쳐드리는 게 싫었거든요.

Q. 부모님은 어떤 교육방침을 가지고 계셨나요?
A. 저희 아버지는 저를 매우 독립적으로 키우셨습니다. '어차피 네 인생은 혼자다. 아무도 너를 도와주지 않는다. 기대지 말아라. 네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라고 항상 말씀하셨어요. 제가 뭘 하든 신경 쓰지 않고 방목하셨죠. 처음부터 그러셨던 건 아니에요. 7살 터울 누나는 유치원이랑 학원도 보내고, 동화책도 많이 사주셨거든요. 동화책들은 5살 터울 형을 거쳐 제게 오면서 멀쩡한 게 없었어요. 중간중간 찢어지거나 훼손된 부분들이 많았죠. 그래서 항상 책을 읽을 땐 내용을 상상하며 읽었어요. 그게 오히려 제 창의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 것 같기도 해요. 또 유치원이랑 트럼펫, 컴퓨터 학원도 쓸 데 없다며 보내주지 않으셨어요. 결국 트럼펫은 동아리에 들어가서, 컴퓨터는 학원 창문 너머로 배웠죠.

Q. '결핍'이 '의지'를 만든 셈이군요.
A.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찾고, 스스로 결정하는 훈련'을 해온 겁니다. 부모가 자녀한테 직접 개입하는 순간 수동적으로 자라게 되거든요. 자기주도적으로 성장해온 저는 학교에서 맞더라도 질문했고, 항상 제 생각을 과감히 말했어요. 또 부모님께서 공부에 대해 잔소리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신문이랑 뉴스를 자주 봤습니다. 아버지가 스크랩해두신 기사들부터 AFKN(주한미군방송)까지요. 자연스럽게 학교 교육보다는 우리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죠. 전두환 정권 당시에는 시위, 고문, 이런 부정적인 일들이 많았잖아요. 학교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상황들, 공무원의 터무니 없는 권한 행사도 봐왔고요. 그래서 한국사회 전반에 대해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Q. 미국에서 경험한 학교 교육은 어땠나요?
A. 첫 학기에 실수로 음악감상 수업을 들었어요. 클래식 음악을 듣고 5장짜리 감상문을 매주 써내야 했는데, 저는 영어 실력이 안됐거든요. 처음에는 'This is good music.' 이렇게 한 문장만 써 냈어요. 교수님께서 저를 불러 왜 감상문을 이렇게 써 냈는지 설명해보라고 하셨죠. 할 말은 많은데 영어로 쓰려니까 힘들다고 솔직하게 말씀 드렸어요. 그랬더니 다음에는 한국어로 감상문을 써오라는 거예요. 그리고 사전을 이용해 한 단어도 빼놓지 말고 영어로 설명하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제 한국어 감상문을 1시간 동안 설명했어요. 교수님은 '이건 영어 수업이 아니다. 음악 수업이다. 난 네 영어실력을 시험하려는 게 아니다. 넌 음악적 재질이 있다.'라고 말씀하시며 제게 A+를 주셨어요. 한국에서 맨날 꾸중만 듣던 제가 칭찬을 듣고 우수한 성적을 받으니 자신감이 충만해졌습니다. 이후 중화요리집 배달, 자동차 딜러 보조, 악세서리 판매, 노인 대상 컴퓨터 교육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경험했고 컴퓨터공학 전공으로 졸업했어요.

Q. 졸업 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A. 학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어깨에 큰 무게를 느꼈고 공부를 더 해서 확실한 진로를 정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미국으로 돌아가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에서 석사 과정을 시작했어요. 그러던 중 '수희'라는 아이를 만나게 됐어요.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이혼 가정에서 자라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아이였죠. 수희 할머니께서 저를 찾아와 도움을 구하셨고, 처음에는 동화책을 읽어보라고 했어요. 곧잘 읽길래 가만히 살펴보니, 글을 읽는 게 아니라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더군요. 학교에서는 어떻게 수업을 따라가냐고 물었더니, 학교에서도 글 읽는 척을 할 뿐이고, 선생님이 뭔가를 시키는 게 두렵다고 하더라고요. 수희에게 글을 빠르게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지요. 지금 알고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수희가 하루 일과를 얘기하면 그 내용을 타이핑한 글을 보여주며 단어를 가르쳤습니다. 중간에 모르는 단어가 있더라도 본인이 얘기한 내용이니 읽을 수 있거든요. 그렇게 '읽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니 금방 배우더라고요. 수학은 동전을 이용해 하나씩 세가며 곱셈, 나눗셈을 가르쳤어요. 수희는 지금 명문대 경영학과에 전액 장학금으로 들어가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출처] Youtube ㅌㅇ


Q. 부학장님의 특별한 코칭법 덕분에 수희의 인생이 바뀌었네요.
A. 첫 유학, 첫 수업에서 만난 음악교수님 덕분에 저도 이렇게 변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 분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이런 교육법을 생각해내지 못했을 거고, 수희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을지도 모르죠. 이렇게 제 가르침으로 누군가의 인생을 바꾼 경험이 교육공학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좋은 선생님이 되려면 '티칭(Teaching)' 하지 말고 '코칭(Coaching)' 해야 합니다. 음악교수님이 제게, 그리고 제가 수희한테 그랬던 것처럼, 가르치려 하지 말고 학생 개개인의 특성과 성향에 따라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해요. 모든 학생들은 국가대표이고, 금메달을 딸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이거든요. 아이의 흥미와 동기를 유발해서 그 가능성을 실현시켜주는 것이 교육자의 역할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문제아'로 치부되는 아이들을 만나보고 싶어요. 그 아이들은 자신의 재능을 찾지 못했을 뿐, 문제아가 아니거든요.

Q.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나요?
A. '타라(Tara)'라는 아이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타라는 59번의 실패를 무릅쓰고 60번째 도전에 성공한 경우입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우울증이 생길 정도로 괴로워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했습니다. 타라와 같은 처지의 저소득층 자녀들이 과학과 엔지니어링을 공부해 세상의 리더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이 일 외에 다른 일에는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노력한 덕분에 지금은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과학과 엔지니어링, 그리고 창업을 교육시키는 단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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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저는 타라를 본 이후로 학생들을 코칭할 때 60번 실패하지 않았다면 포기할 자격이 없다고 얘기합니다. 만약 60번 시도했는데도 안되면, 그때는 제가 모두 책임지겠다고요. 스탠퍼드에서 16년 재직하는 동안 제게 책임지라고 찾아오는 학생은 없었습니다. 사실 실리콘밸리에는 타라와 같은 학생들이 많습니다. 저를 만나기 위해 스탠퍼드 학생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아무리 시간이 없더라도 모두 만나려고 합니다. 그 작은 만남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 있고 세상에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면, 그보다 보람된 일은 없기 때문이죠.

Q. 부학장님 자녀들은 어떻게 코칭하고 계신가요?
A. 어릴 때부터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방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자기주도적인 아이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두 딸도 저희 부모님이 제게 하셨던 것처럼 방목하며 키우고 있어요. 저는 무슨 일이든 아이들이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아이들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거든요. 제 역할은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독려해주고, 약간의 금전적 지원을 해주는 것밖에 없어요.

저는 아이들에게 세상 모든 곳이 평화롭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주려고 노력합니다. 인도 콜카타(캘커타)에 있는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서 봉사를 하며 생활하게 하기도 했죠. 인도까지 가는 왕복항공권과 시내교통비만 지원해주고 스스로 찾아가게 했습니다. 저 역시 고등학교 때부터 혼자 꽃동네에 가서 봉사하곤 했거든요. 꽃동네 초입에 '내가 내 스스로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축복입니다.'라고 적힌 팻말이 있어요. 그 글귀를 보고 생각해보니 저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더라고요. 축복받은 사람인 거죠. 이런 메시지를 아이들이 몸소 느끼길 바라요.

Q.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모범생이 되기보다는 모험생이 되겠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어요. 모험생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일단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능력을 키워야 해요. 그러려면 두려움이 없어야 하고요. 보통 두뇌의 반은 두려움에 감싸져 있어요. 학교나 직장 선택, 모든 것에 있어서 두려움이 반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내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기 힘들죠. 이런 두려움은 '혹시 잘못되지 않을까? 실수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비롯돼요. 그리고 이런 생각은 본인이 속한 사회문화와 관련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학교에서 ‘바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어요. 사실 아이들한테 절대 그런 말을 하면 안되거든요. '너는 할 수 있어. 국가대표 감이야.' 이런 긍정적인 말을 계속 해줘야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가 생기면 두려움이 없어지고 내가 몰랐던 역량까지 끌어낼 수 있어요.

Q. 마지막으로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청년들에게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A. 저는 항상 허리에 통증을 달고 다닙니다. 공부하면서 오랫동안 앉아 있는 바람에 생긴 것이지요. 시간이 흐르면서 통증이 악화되었지만 전 어떻게든 이 통증을 다루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2005년 처음 멕시코로 교육봉사를 하러 갔을 때에도 장시간 앉아서 이동하는 동안 고통을 참아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전 이 통증을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통증을 금방 이해할 수 있거든요. 'If it doesn’t kill you, it makes you stronger(날 죽이지 못하는 것들은 날 더 강하게 만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 자신을 죽이지 못하는 시련과 고난은 결국에 극복될 것이고, 그것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 좌절시키거나 포기하게 만들진 못한다는 뜻이죠. 우리나라 청년들도 고통이나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낙심하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생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신 레몬밖에 받지 못했다면, 레몬주스를 만들면 되는 겁니다.



폴김은 스마일 프로젝트를 위해 가난한 나라를 찾아갔을 때,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 있어서 교육을 위한 전자기기를 충전할 방법을 고민했다. 연을 수없이 날리며 바람으로 전기를 만드는 법을 연구하다 이상한 실험을 하는 괴짜 선생님으로 몰리기도 했다고 한다. 12년 간 고통스러운 학교생활을 하던 그가 스스로 좋아서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깨우쳐 이제는 세계 각국을 돌며 그 가르침을 전파하고 있다.


[관련영상]
Youtube ㅌㅇ [스탠퍼드 CTO & 부학장 폴 킴이 말하는 혁신을 위한 질문]


[출처]
중앙일보 [배양숙의 Q] 한국 열등생 폴김을 스탠퍼드대 부학장으로 만든 '코칭'의 힘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썸네일 출처]
Youtube ㅌ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