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국민’이라는 타이틀을 얻기는 쉽지 않다. 특히 팀별로 팬들이 나뉘는 스포츠 종목에서는 더더욱. 그래서 ‘국민 타자’라는 명예는 가치 있다. 23년 동안 600회가 넘는 홈런으로 스트레스를 뻥 날려주고, 올림픽 금메달로 많은 국민들의 입가에 웃음을 선사한 이승엽 선수. 야구 선수라는 무거운 배트를 내려놓은 그는 “이제는 야구장 밖에서 책을 더 많이 읽고 싶다”고 말했다.
소설보다는 수필을 좋아하고, SF보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좋아한다는 이승엽 선수. 그는 요즘 생애 첫 자서전을 쓰고 있다.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에 감동하고 눈물도 펑펑 흘린다는 그를 만나 야구를 시작하게 된 어린 날과 앞으로 꾸려갈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출처] KBS N SPORTS
■ 초등학생의 금식 투쟁
어렸을 때부터 공부보다는 활동적으로 할 수 있는 운동을 좋아했어요. 많은 스포츠 중에서 야구를 선택하게 된 것은 한 선생님 덕분이에요. 아직도 누군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그분께 참 감사하다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그 선생님의 추천으로 공 던지기 대회에 나갔던 적이 있어요. 거기서 제 모습을 좋게 보셨던 야구부 선생님이 스카우트 제의를 했고 그렇게 야구를 시작하게 됐죠.
부모님께서는 반대하셨어요. 운동선수는 춥고 배고픈 직업이라고요.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어요. 7살 때 프로야구가 출범했고 가장 좋아했던 운동이 야구였거든요. 막내아들로서 부릴 수 있는 고집은 다 부렸던 것 같아요. 초등학생이 무턱대고 금식 투쟁에 들어갔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요. 결국 제가 이겼어요. 아버지와 ‘중간에 포기해도 부모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고 야구부에 들어갔어요. 지금도 그 순간이 제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대학교 대신 프로 생활을 선택한 것도 100% 제가 원해서 내린 결정이에요. 부모님께서는 체육 선생님이 되길 원하셨지만 저는 최고의 야구 선수가 되고 싶었죠. 과감하게 프로의 길을 선택했어요. 선생님이 되어 성공한 삶을 살 수도 있었겠지만 아마 그랬더라도 결국에는 후회했을 거예요. 제가 진정으로 원하던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출처] KBS N SPORTS
■ 막내아들의 고집, 부지런한 홈런왕을 만들다
곱게 자랐어요. 막내아들 이어서인지 고집부리면 원하는 대로 다 됐거든요. 자연스레 고집이 몸에 배더라고요.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아 하는 자세도 그랬죠. 야구를 하다 보니 그 고집이 끈기로 바뀌더군요. 물고 늘어지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음의 원천. 끈기도 고집의 연장선이라 여기는 이유예요. 그러고 보면 정말 운동을 해서 다행인 거 같아요.
그 끈기는 일본에서 또 한 번 바뀌었어요. 일본에서의 8년은 야구 선수로서 부족함을 참 많이 느꼈던 시간이에요. 일본에 가기 직전, 한국에서는 참 잘 나갔던 것 같아요. 실력에 비해 운도 좋았고, 젊어서 몸도 빠르게 반응했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많이 낼 수 있었죠. 노력하지 않아도 성적이 계속 좋아지니까 거만해지고 게을러졌어요. 그 상태로 일본에 갔다가 혼이 난 거죠.
일본 리그를 너무 만만하게 봤어요. 일본은 잘 하는 나라였어요. 당시 2군으로 내려갔을 때는 정말 자존심이 많이 상했죠. 제가 보기보다 많이 예민한 성격이라 주변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편이거든요. 언론에서, 주위 지인들에게서 안 좋은 얘기가 나올 때마다 너무 힘들어했던 기억이 나요. 자연스럽게 슬럼프로 이어졌죠.
프로는 결과를 가지고 말해야 해요. 마음 아픈 이야기이지만 현실이 그렇죠. 연습 경기를 아무리 잘 치러도, 실제 경기에서 성적이 나쁘면 대접받을 수 없는 것이 프로 세계죠. 프로가 되어 좋은 성적(결과)을 유지하려면 아마추어 때 쌓은 연습과 노력(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꼈어요. 그래서 저는 아마추어 학생들을 만나면 항상 “너희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말하곤 해요. ‘아마추어는 과정, 프로는 결과’라고 생각해요.
저도 일본에선 아마추어의 마음으로 돌아갔어요. 부진한 성적을 메우기 위해 연습량을 늘렸죠. 스윙 150~200개, 선수로서 힘든 양의 훈련을 매일같이 해냈어요. 일본에서 8년간의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저도 모르게 팀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 있었어요. 고집이 끈기로, 그 끈기가 부지런한 야구 선수를 만든 거죠. 지금은 너무 부지런해져서 오히려 걱정이에요.(하하) 누군가는 이승엽이 일본에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하고 아쉬워하지만, 일본 행은 제 야구 인생에서 엄청난 전환점이었고 배운 것이 가장 많았던 시기였어요.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 이승엽에게 책은 ‘또 하나의 야구’
야구와 책은 공통점이 있어요. 차분해야 하죠. 그리고 집중해야 해요.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배트에 공이 잘 맞지 않듯, 책도 집중하지 않으면 잘 읽을 수 없어요. 집중해서 차분히 읽어야 내용도 이해가 되고 머릿속에 그림도 그려지죠. 책은 저에게 ‘또 하나의 야구’인 것 같아요.
선수 생활을 할 때는 책을 많이 읽지 못했어요. 야구에 몰두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책을 좋아해요. 전지훈련 갈 때도 늘 책을 2~3권씩 사서 비행기에 올랐어요. 쉬는 시간에도 틈나는 대로 읽었죠. 책을 읽으면 마음도 차분해지고 자연스럽게 집중력도 올라가더라고요.
제가 또 겉모습과 달리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인데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다가도 슬픈 장면에서는 잘 울고 그래요. 그래서인지 소설보다는 수필, SF보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더 좋아해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읽으면 더 공감도 잘 되고 기분이 좋아요. 저는 사람 냄새 나는 것들을 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야구계를 떠나 사회로 나오면서 책, 서재에 대한 필요성을 더 많이 느끼는 요즘이에요. 선수 때는 야구 이야기만 하면 됐는데 사회로 나와보니 야구 말고도 많은 것을 알아야 하더라고요. 정치, 문화, 경제, 예술 등 알아야 할 것은 많은데 시간은 적어요. 독서를 통해서 지식을 쌓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 선수라는 무게를 내려놓고…
2018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 태극기를 들고 입장하는 영광을 안았어요. 제가 야구를 하지 않았었다면 얻을 수 없었던 기회였기에 너무 행복했죠. 사실 이런 기회가 올 때마다 ‘정말 야구하길 잘했다’고 스스로 수십 번씩 생각해요. 일반인 신분으로 올림픽을 관람하면서는 선수들이 너무 부러웠어요. 저도 올림픽에 나갔고 금메달도 땄던 기억이 있기에 당시에 느꼈던 행복함, 선후배의 끈끈한 정 같은 것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더라고요.
지난 23년간 야구를 하면서 너무나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제가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저를 응원해주시고 믿어주신 국민들 덕분이라고 항상 생각해요. “한국에 돌아와 줘서 고맙다. 당신의 플레이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 고맙다. 홈런 많이 쳐줘서 고맙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정말로 세상 행복했습니다.
그는 그 동안 야구 선수로서 한국 야구를 알렸다면, 이제는 야구장 밖에서 한국 프로 야구를 위해 할 일을 찾으려고 하고 있고 KBO 홍보대사와 야구장학재단을 만든 것도 그 일환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프로 야구와 관련된 일이라면 두 발 벗고 달려갈 생각이라는 그는 한국 프로 야구에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이승엽에게 서재는 ‘또 하나의 야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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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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